예장 보수 총무 김고현 목사

그리스 교훈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헤시오도스는 "남의 험담을 하면, 곧 당신의 험담이 돌아오는 줄 알라"고 했다. 우리 속담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남을 헌담 하면, 그 헌담이 봉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목민심서>를 비롯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서 많은 저서를 남긴 다산 정약용 선생은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는 1801년(순조 1년) 천주교 신자들이 모진 탄압을 받고 있을 때, 정약용의 형제들도 끌려가 몽둥이 찜질을 받았다.

특히 형 약전과 동생 약종이 천주교의 주요 인물로 지목되었으며, 형 약종은 죽고, 한국 최초의 영세자이며 한국 천주교회 창설자 중 한 사람인 매부 이승훈(교명은 베드로)도 죽었다. 그러나 다산은 살아남아 강진에서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오랜 귀양살이를 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을 저술하고, 여유당집을 집필했다. 그는 지금까지 이 땅에서 보지 못한 개혁사상가였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낙향해 친지들과 함께 정자에 모여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한탄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김조순(안동김씨)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권세와 명예를 거머쥐었으니, 분통 터질 일 아닌가."

그러자 다산은 그에게 말했다.
"사람은 함부로 품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 지나자 또 다른 이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었다.
"저 말(馬, horse)은 짐도 지지 못하면서 풀과 콩만 축내는구나."

그 말을 들은 정약용은 그에게도 말했다.
"짐승에게도 품평해선 안 된다."

그러자 함께 있던 사람들이 정약용에게 핀잔을 주며 말했다.
"자네와 함께 있을 때는 입을 꿰매고 혀를 묶어야겠네."

그의 말에 정약용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종일토록 품평해도 화낼 줄 모르는 것이 바로 이 바위들입니다. 그러니 입을 묶어둘 필요는 없지."

그 말을 들은 한 사람이 정약용에게 물었다.
"바위는 화낼 줄 모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자유롭게 품평할 수 있는 것이오"

그러자 정약용은 다시 대답했다.
"저는 저 바위를 보면서 칭찬만 하였다. 언제 모욕을 주거나 불손하게 말한 적이 있었는가"

다산 정약용은 이 말로 참된 품평은 칭찬에 있음을 강조했다. 이 일화로 그 정자는 바위마저도 칭찬해야 한다'는 의미의 '품석정'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정약용은 이후 이런 말을 남겼다.
"남을 품평하는 것은 참으로 쓸모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남을 평가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모이기만 하면 남을 험담하기 바쁜 사람들이 있다. 두세 사람이 모여 순식간에 한 사람을 몹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험담은 참으로 쓸모없는 일이며, 위험한 일이다. 험담은 일차적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비수를 꽂지만,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와 꽂히게 되어 있다. 남과 자신을 다치게 하는 험담으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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