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 장보연 교수

일본군의 성노예 실상을 국내외에 알린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달 28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국내외의 주요 언론은 그의 삶과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까지 강한 분노와 절규를 일제히 보도했다. 그녀는 일본식민지세력의 가장 큰 피해자이며,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대표적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분명 생명의 담지자로서, 민족의 어머니로서,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어 여자로서 감내하기 힘든 수모를 당하며, 고난당한 한민족, 아니 아시아의 여성을 대표한다.

국내 언론은 물론, 세계 언론들은 김복동 할머니에 대해 장문의 부고 기사로 김복동 할머니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그녀는 유명한 정치인도, 유명한 과학자도 아니다. 한반도 남쪽의 90세가 넘은 노인의 죽음, 그녀의 일생을 따라가며 되짚어내고 그의 죽음이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주는 의미를 온 세계에 상기시켰다.

언론들은 또 그의 죽음과 삶을 되살리며 일본의 전쟁 범죄의 만행과 사과하지 않는 파렴치함에 대해 전 세계에 알렸다. 또한 언론들은 가해자인 일본에 대해 김복동 할머니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까지 강한 분노를 표시하며 '절규하며 죽었다'고 전했다. 그녀의 ‘한의 소리’, 아니 일본군 성노예로 고난을 당한 아시아 여성들의 ‘한의 소리’를 김복동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새롭게 조명됐다. 죽으면서까지 끝내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일본군 성노예 여성들의 ‘한의 소리’가 언론을 통해 하늘에 사무친 것이다.

 BBC는 지난 3일 <부고: 한국의 '위안부' 김복동 할머니>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복동 할머니의 참혹했던 일본군 성노예 실태, 해방 후 귀국, 어머니의 고통스런 죽음, 자신의 과거를 알리고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며 싸움에 나선 치열한 삶, 그 후 인권운동가로서의 삶과 끝내 사과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분노에 대해 끝까지 싸울 것을 당부한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상세히 보도했다.

<한국의 활동가 김복동 할머니가 향년 92세로 세상을 뜨셨다>로 시작된 기사는 “할머니의 관은 서울에 주재한 일본 대사관 앞을 지나갔다. 이 마지막 행렬에는 많은 조문객들이 현수막과 노란 나비들을 들고 함께했다. "일본은 사과해야 한다"라는 울부짖음이 군중들 위로 크게 울리기도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조용히 훌쩍였다”고 장례식 풍경을 전했다. 그리고 이 장례행렬은 일반적인 장례행렬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는 것도 덧붙였다.

그렇다 BBC가 보도한 것처럼 김복동 할머니의 장레식은 일반 장레식과는 분명 다랐다. 김복동 할머니는 일반적인 여성이 아니었다. 이 장례 행렬은 그녀로부터 많은 것을 훔쳐간 전범국가인 일본에 저항하는 할머니의 마지막 행동이었다. 그녀는 그토록 원했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여전히 불의에 맞서 싸우며, 그녀가 누릴 수도 있었던, 누렸어야 마땅한 자신의 삶을 낚아챈 일본에 대해 여전히 분노한 채로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그녀의 죽음은 일본군 성노예로 고난을 당한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의 한에 사무친 분노이며, 절규로 대변된다. 그녀는 성폭력을 당한 세계 모든 영성들의 영웅이며, 엄마이다. 그리고 희망이다. 김복동 할머니는 박근혜 정부와 일본정부의 10억 엔을 지불하기로 한 한일 협정(2015년)을 비웃었다. 김복동 할머니가 원했던 것은, 일본이 아시아 여성들을 성노예로 삼았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를 위해 죽는 날까지, 아니 죽어서도 이를 위해 싸웠다

김복동 할머니의 유산은 헛되지 않았다. 그녀의 싸움은 세계성폭력 피해 모든 여성들의 ‘한의 소리’를 대변했다. 그 ‘한의 소리’는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세계 성폭력 생존 피해자들은 할머니를 ‘우리의 영웅’, ‘우리의 엄마’,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또 그의 정신은 계속해서 저항하고, 분노하며, 절규 할 것이다. 따라서 그가 남긴 유산은 너무나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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