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패밀리 대표•개신대 장보연 상담학교수

“과거가 미래가 아닌 이유가 바로 현재이다. 과거는 <오늘>이라는 정거장을 꼭 거쳐가야지만 미래로 갈 수 있다. 지금 이 정거장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직진해 갈 것인지, 환승하기 위해 내려올 것인지. 그렇다면 어느 역으로 갈 것인지. 다 <오늘>이라는 정거장에서 결정이 난다. 그것은 어제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좋은 글>

오늘은 미래를 향해 가는 과정 속에서 꼭 거쳐야만 하는 정거장과도 갖다. 오늘이 없는 사람은 미래도 없다고 했다. 오늘이 있어야만 미래도 있고, 소망도 있다. 새해 첫날 모두가 미래를 가기 위한 현재의 위치에서 하나님께 꿈(기도)을 빌었다. 그 꿈은 미래를 위한 소박한 꿈이며,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하나님나라의 도래에 대한 소망이었다. 경자년 2020년도 1월을 지나 2월이 시작됐고, 2월도 반이 지났다.

봄을 알리는 입춘도 지났다. 봄은 오늘의 삶 속에서 지친 모든 사람에게 생동감을 준다. 꽁꽁 얼어붙은 땅들이 기지개를 펴면서, 파란 새싹들이 솟아난다. 푸르름은 오늘의 삶 속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는 물론, 미래를 향한 소망을 준다. 안정감도 주고, 평화를 가져다가 준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저 푸른 들판을 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해 지친 사람들에게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가 주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꽁꽁 얼어붙은 오늘이 있어야 생명이 흘러넘치는 내일이 있다. ‘오늘’이란 말은 이른 아침 산책을 하다가 옹달샘에서 시원한 샘물 한 모금을 마시는 것과도 같다. 그 만큼 오늘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신선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른 새벽에 눈을 뜨고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오늘도 살아 있다는 것과 새로운 날, 새날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다. 분명 새날, 새아침은 나에게 희망이다. 미래로 나가기 위한 시작이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꿈도 없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도 없다.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서 실현하려는 꿈도 없다. 이런 사람은 <오늘> 또한 어제와 같고 내일 또한 <오늘>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미련이나, 바람은 어디로 가고, 매일 매일에 변화가 없는 삶을 산다.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 <오늘>은 결코 살아 있는 시간이 될 수 없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에 머물러 쓸쓸한 여운의 그림자만 붙박여 있을 뿐이다. 오늘은 오늘,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미래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그러므로 <오늘>이 아무리 고달프고 괴로운 일들로 발목을 잡는다 해도, 그 사슬에 매여 결코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발목을 잡는 오늘의 사슬을 과감하게 끊어버리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자.

그리스도인들은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영국의 시인이며, 비평가이고, 수필가로 <사전>을 편찬한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 1709~1784)은 “짧은 인생은 시간의 낭비에 의해서 더욱 짧아진다"고 했다. 이 말의 의미는 시간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을 늘 새로운 모습으로 바라보고 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늘 공평하게 찾아오는 삶의 원칙이 바로 <오늘>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늘의 삶이 내일, 미래를 열어준다는 진리를 깨닫자. 그리고 하나님나라를 소망해 보자. 하나님나라는 꿈을 가진 자만이,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자만이 이웃과 더불어 들어갈 수 있다. 저 푸른 들판을 상상하며, 경자년 2020년도에는 이 땅의 그리스도의 해가 도래 할 수 있도록 꿈을 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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