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중앙교회 황인찬 목사

초대교회 때부터 시작된 수도원 운동은 2000년 교회역사에서 중단 없이 계속 된 경건운동이다. 수도원 운동은 세속생활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는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보다 경건하게 살려는 갈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기독교 역사에서 수도원 운동의 모양은 다양했지만 시대를 무론하고 수도자들에게 공통된 서원은 청빈(淸貧), 순결(純潔), 순명(順命)이다.

이 청빈, 순결, 순명은 산상수훈을 중심으로 하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요약한 것이다. 종파를 초월하여 수도자들은 이 세 정신을 갈고 닦아 예수님의 삶을 닮는 것이 목표로 했다. 수도원과 수도사의 생활규칙을 만든 성 베내딕토 폰 누르시아(St. Benedictus von Nursia. 가톨릭의 베네딕토 수도회의 창설자. 480? ~ 550?)는 수도자들이 거룩한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자신을 개혁하는 수도정신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수도자의 요강(要綱) 중의 첫째가 청빈(淸貧)이다.

청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 그 자체이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외양간에서 나셨고, 30년을 목수로 사셨다. 당시의 목수는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노동자다. 예수님은 3년간 공생 사역 중에 자신의 삶을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고 요약하신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근거지 없이 떠도는 유랑이었다. 주의 가르침의 강령이 되는 산상수훈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라고 시작하신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사회를 정화시킬 힘을 잃고, 오히려 세상의 질타를 받고, 세상 권력이 얕잡아 보는 것은 교회와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청빈의 신앙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도자들에 있어 순결(純潔)의 기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삶 자체이다. 33년에 걸친 예수 그리스도의 짧은 일생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티 하나 없는 순결 그 자체시다. 순결의 쉬운 말은 잡된 것이 섞이지 아니한 깨끗함이다.

요한1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깨끗하여야 할 이유에 대하여 말씀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1서 3:3)

믿음과 소망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깨끗하셨으니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깨끗하여야 한다는 주문이다. 깨끗함이 힘이다.

평생을 깨끗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복중의 복이다.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회개하면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다고 약속한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지난 날 깨끗하게 살지 못하였음을 후회만이 아니라 철저한 회개와 올곧은 믿음으로 깨끗하여지고, 깨끗한 삶 살기를 결단하는데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순명(順命)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자기를 온전히 바치는 삶을 말한다. 순명의 모본도 물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께서 마지막 날 밤에 드린 기도가 순명의 모본이 된다.

"(예수께서)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시니"(눅 22:41, 42)

주님의 이 기도에서처럼 자기가 원하는 것이나 자신의 뜻하는 바가 아니라, 나를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 그것에 자신의 삶을 반영하여 바치는 삶이 진정한 순명의 신앙이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자기 뜻을 이루려 한다. 그러기에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듣고, 구하는 기도다. 하나님께 무언가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참되고 바른 기도다. 그래서 기도는 Speaking(말하기)이 아니라 Listening(청취, 귀를 기울임, 경청)이다.

빌립보서 2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개하면서 진정한 순명의 삶을 교훈하신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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