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운그리스도의교회 오수강 목사

지금 나라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활동의 위축으로 인해 개인사업 폐업과 직장의 무보수 휴직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라마다 일정한 금액을 재난 지원금 명목으로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형편이다. 재원은 국민들이 낸 세금이다. 얼어붙은 개인사업과 재래시장과 영세한 자영업자들에게 다소 활력을 불어 넣어 활성화 되게 하기 위한 정부의 골육지책이다. 이로 인해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은 더 늘어날 것이 빤하고 국가경제의 앞날에 드리운 암운을 걷어내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국가가 중앙정부 차원에 지원하고, 지방정부도 국민 고난에 동참하기위해 재정을 긴축하여 재난기금으로 사용한 지자체도 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감염 병으로 인해 오는 위축된 경제를 조금이라도 살리고자 하는 정부의 긴급한 비상 대책인줄로 안다.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는 본래 예산으로 책정된 것을 줄이고 국민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부처의 예산을 긴축해야만 했다. 나라 살림을 살아야 하는 정부도 국민이 긴급한 사태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움 겪는 모습을 외면치 않고 함께 이겨 나가는데 국정 운영의 우선순위로 둔 모습을 국민들은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위기사태에 정신적으로 안정을 위한 종교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이질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러한 때에 종교 특히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며 실천하기를 희망한다. 실천 가능한 일이무엇일까? 국민이자 신자들인 기독교인들에게 교회당국은 무엇을 해야 만 하는가? 말로만 감염 병에 확진된 자들에게는 속히 쾌유를 빈말로 기원하면 무슨 효과가 있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견디는 힘을 주시고 나중에 축복하시리라고 말로만 하면 마음에 와 닺지 않는다. 기도로 아무리 위안을 준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실제적으로 약간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냥 있으면 교회의 신뢰도는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교회의 신자들을 살펴보라. 실직자, 개인사업 중단, 자영업자 고통, 청소년들의 아르바이트 실직, 시장 모퉁이에서 좌판 장사의 눈물, 일일 노동자들의 일거리 사라짐, 등등의 사람들이 바로 교회 신자들이다. 그런데 교회는 이들을 위해 말로 기도로 위로는 할지 모르지만 실제 도움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이라도 교회 재정이 돌아가는 교회들은 교회의 재정을 교회신자들 특히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분담하면 어떨지?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성도들의 작고 큰 헌금으로 지탱하여 왔으며 오늘날 거대한 교회건물도 역시 성도들의 지갑에서 나온 돈으로 일으켰다. 그러므로 선교 이래 한번쯤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자들에게 묻지 말고 단 얼마라도 헌금을 되돌려 주면 어떤가? 혹 무슨 망발을 늘어놓느냐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또한 비 신앙적이라고 돌을 던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사례는 보지 못했다고 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정부도 유사 이래로 국민으로부터 거두어들인 세금을 정작 국방비 등 급히 써야 할 것을 잠시 보류 내지 중단하고 국민의 생존을 우선하여 되돌려 주는 일을 우리들은 현재 겪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에서 볼 수 있는 유일 한 영적 기관이다. 그러면 교회의 생각을 하나님이면 이런 때에 어떤 생각을 가지셨는지를 생각하고 깊이 묵상해야 한다. 구약의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의 물은 생존의 극한 상황에 처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극한 상황에 놓인 교회 어려운 신자들에게 교회에서 나눔의 실천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고 실행하였으면 한다. 지금까지 교회는 구제와 선교에 적지 않은 헌금을 사용했다. 이제 중대형 교회들은 아주 작은 교회, 개척 도상에 있는 교회, 미 자립 교회의 형편을 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해봄이 어떤가?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님 편에서 하는 생각을 가졌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물론 교회가 설립 된 초기교회부터 현대 교회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세계가 어려움을 직면 할 때마다 구호, 구제기능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 모든 재원은 신자들의 자발적인 헌금과 헌물에 의해 이루어졌다.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은 기도하는 일에 전념키 위해 집사를 선택해 교회에 들어 온 재물 관리를 맡겼다. 그 재물은 모두 어려운 이웃과 교회 속 가난한 자, 그리고 과부와 고아를 위해 쓰여 졌다. 오늘의 교회는 초대교회의 재정 규모와는 비교 불가다. 하나님도 깜짝 놀랄만한 일인 교회가 비움을 통해 초대 교회의 모습 회복함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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