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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뿌리와 근원에 대한 탐구 (3)

기사승인 2020.07.06  11: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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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의 뿌리를 찾아서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김재성 조직신학교수

따라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도착한 시점으로부터 한국기독교 역사를 계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한 서술들은 전혀 역사적 사실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고,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다. 최초 한국인이 쓴 한국교회의 초기 선교 역사는 백락준의 예일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을 확장하여 한국어로 펴낸 것인데, 이 책에서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로부터 시작하였다. 그 후로 별다른 검증없이 반복되고 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연세대학교와 이화대학교 등 많은 교유기관들을 설립한 분들이기에, 그들의 역할과 공로를 소중하게 존중하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한국교회의 첫 장에다가 오직 이 두 분의 선교사역으로 중심으로 삼으려 하는 것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알렌의 의료선교 활동을 통해서 한국 복음화의 빗장이 풀렸다는 것만은 정확하게 기억하자. 미국 공사관에 소속된 그가 본격적으로 전문 선교활동에 매진한 분은 아니었지만, 북장로교회 선교사로서 한국에 입국해서 온갖 노력을 다해서 이 땅에 복음화의 문호를 개방하는데 큰 기여를 했기에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의 의료 수술을 알게 된 고종과 민비가 서방 세계의 기독교에 대해서 듣게 된 후, 큰 신뢰를 표명하면서 바로 그 다음 해에 공식적인 개신교 선교사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한국교회사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을 갖고 이러한 초기 자료들을 확인한다면, 정확한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 들어온 최초의 의료 선교사를 통해서 펼치신 하나님의 섭리와 기적을 기억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저 막연히 귀로 듣는 이야기를 따라서 판단하지 말아야 하고, 마치 왜곡된 내용을 진리처럼 착각하게 되는 오류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한국선교의 첫 출발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초기 한국 주재 선교사들이 어떤 역사의식을 가지고 활동했던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가장 객관적인 자료는 매년 개최된 초기 한국 주재 선교사들의 기념대회를 통해서 제시된 문서들이다. 일본의 탄압에 무릎을 꿇은 한반도에서 한국주재 초기 선교사들은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봉사와 섬김과 희생을 바쳤다. 그리고 매년 모임을 갖고 선교사들의 효과적인 업무를 상의하면서, 상호 교제를 나누었다.

매년 개최된 한국 선교기념 대회 중에서 주목할 만한 행사가 있었는데, 바로 1909년 8월 27일, 평양에서 “한국선교 25주년 대회”로 모였다. 이 모임은 당시 한국에 장기간 주재하고 있던 초기 개신교 선교자들의 역사적인 기록이다. 이 모임에서 취합된 자료에서 바로 한국에서 최초로 선교가 시작된 기점을 확인시켜 준다. 이 때 출판된 보고서에는 1884년부터 1909년까지의 선교사역들을 정리하면서, 정확하게 따로 한 쪽을 할애하여 초기 선교사들의 입국일자를 기록해서 역사적으로 기록해 놓았다;

알렌 (Dr. Horace N. Allen)................................1884년 9월 20일.
언더우드 (Rev. Dr. Horace G. Underwood...........1885년 4월 5일.
스크랜톤 (Dr. William B. Scranton)......................1885년 5월 1일.
부인과 어머니 (Mrs. Mary F. Scranton)이 6월에 입국.
아펜젤러 (Rev. H. G. Appenzellre)와 부인..... 언더우드와 함께 제물포에 도착했으나, 잠시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 6월에 다시 들어옴.
헤론 (Dr. and Mrs. J. W. Heron)..........................1885년 6월 21일.


다시 말하자면, 초기 한국 주재 선교사들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서 모두 다 알렌 선교사의 입국을 기점으로 해서 한반도 선교와 초기 한국 기독교 역사를 정리하였다. 그 전통을 계승하여 한국교회가 기념을 하는 것에 대해서 또 다른 이의를 제기하려면 정확한 오류에 대한 지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미 구한말 조선에 들어온 초기 장기체류 선교사들이 분명히 그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겨서 기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김재성 교수 webmaster@kidokline.com

<저작권자 © 기독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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