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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지역 민주화운동 대부 유영소 목사 별세

기사승인 2021.03.02  11: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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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94세의 일기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전과 충남지역의 민주화운동 대부로 알려진 우야(牛野) 유영소 목사가 지난 14일 오전 4시 57분 만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유 목사는 한신대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목사임직을 받은 후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로 경기, 경북, 충남, 대전에서 현장목회를 했고, 교단 대전노회장, 공로목사를 비롯해 대전충남인권선교협의회장, 대전기독교교회협의회장, 대전YMCA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장례는 한국기독교장로회 대전광역노회장으로 치러졌으며, 장지는 충북 괴산군 호국원이다.

유족으로는 장남 달상(기독교한국신문 대표), 차남 효상(뉴시스 대전충남본부 취재부장), 장녀 순옥(감리교 목사 미국채류), 순희, 연상(신평요양센터 원장), 연옥(세종챔버오케스트라 단장) 등 2남 4녀가 있다.

사위는 김영대(미국 감리교 은퇴목사), 강신우(개인사업), 홍종원(중등교사 은퇴), 박영기(개인사업)와 자부로는 박미자(서울 꿈나무미혼모자공동생활가정 원장), 김정미(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팀장)이 있다.

한편 유영소 목사는 1926년 5월 6일 충남 보령에서 출생했다. 하나님과 나라, 교회를 위해 한 평생 민중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여기에는 늘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들고, 억울하고, 고난당하는 이들이 있었다.

경찰로 근무하다 한신대학교에서 목회자 과정을 공부한 유 목사는 1961년대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가 됐다. 이어 농어촌교회 부흥을 위해, 70년대에는 국제인권단체인 엠네스티 회원으로서 인권선교를 위해, 80~90년대에는 민중민주선교를 위해 일생을 헌신했다. 김대중, 노무현 등 민주정권이 탄생한 후에는 소외받는 노인들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해왔다.

특히 유 목사는 1970년대 들어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다 투옥 또는 탄압받는 학생, 정치인, 노동자 등의 인권보호를 위해 앞장섰다. 천안에서 시민교회를 개척했던 유 목사는 경찰과 중앙정보부를 피해 도망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은신처를 제공했고, 투옥된 이들에게는 책과 영치금을 넣어주고 면회까지 가서 기도로 위로해 주었다.

이를 계기로 1980년 3월 1일 전두환 군사정권이 시작되던 시점에 민주화운동의 불모지인 충남의 심장부 대전에 민중교회를 설립했다. 그해 5월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10 민주항쟁 당시 민중교회는 민주화운동의 성지이자 구심점이 됐다.

유 목사가 설립한 민중교회는 당시 대전충남지역 민주화운동에 나선 학생과 종교인, 재야정치인, 노동자 등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따뜻한 품이었다. 유 목사는 충남대, 한남대, 공주대, 대전대, 배재대, 등 지역 대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을 적극 후원했다. 민중교회에서 숙식은 물론 필요한 서적과 집회시위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을 만들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다. 당시 민중교회에서 밥 한 끼 안 먹은 사람은 운동권 출신이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또한 군사독재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문익환, 문동환, 함석헌, 이문영, 안병무, 김찬국, 정진동, 이재정 등과 같은 재야인사들을 초청, 시국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유 목사는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재야정치인들과도 안심하고 서로 말을 터놓고 지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무엇보다 유 목사는 배움을 갈망하는 노동자와 청소년들에게 야학을 만들었다.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대학생을 교사로 세워 검정고시에 대거 합격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유 목사와 야학 교사들이 수사기관에 잡혀가고 노동자들도 해산당하는 등의 고통을 겪기도 했다.

당시 많은 청년, 대학생들이 민주화운동을 과정에서 투옥되는 일이 생기면서 부모들이 모이는 장소가 됐다. 유 목사는 이 학생들의 부모들과 민주화운동가족실천협의회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자녀들의 민주화운동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정의를 위한 올바른 행동이라는 것을 인식시켰다.

유 목사는 아들들이 투옥되고 학교에서 쫓겨나는 등 고통스럽고 빈곤한 삶을 사는 가족들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민중민주화운동은 당연히 짊어져야 할 고난의 십자가로 고백해왔다.

그는 그렇게 이름도 빛도 없이 100년 가까운 인생을 살면서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도 하나님과 교회와 나라와를 위해 기도했다.

유 목사는 마지막 유언으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두 마디를 남겼다.

유환의 기자 kidokline@daum.net

<저작권자 © 기독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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