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횃불교회 이재희 목사

요한삼서는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와는 달리 교회가 아니라 개인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요한 자신이 전도하고 양육해서 자신이 목회자로 섬기던 교회의 목회자로 세웠던, 그러니까 동역자인 동시에 영적인 자녀인 가이오라는 장로에게 보낸 개인 서신이다. 요한삼서 편지의 주인공 가이오 장로는 요한에게 특별한 기쁨과 사랑을 받은 자이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첫 문장부터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축복의 말을 아끼지 않고 써 내려갔다.

1절에 사랑하는 가이오, 2절 사랑하는자, 5절 사랑하는 자여 요한이 가이오를 향해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한 횟수만으로 보더라도 우리의 요한이 가이오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사랑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영혼이 잘되다` 에서 `잘되다` 라는 동사는 현재형 수동태이고, `범사가 잘되다`와 `강건하다`라는 동사는 미래형을 나타내고 있다. 가이오는 이미 하나님께 영혼의 복, 강건의 복, 범사에 잘된 복을 받았고 현재 잘 되고 있는 상황을 말한다.

가이오가 사도요한에게 이토록 칭찬과 격려를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교회 안에서 함께하는 자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자였다. 3절에 여러 형제들이 사도요한에게 찾아와 가이오가 진리 안에 행한다고 칭찬한다. 생활 속에서 신실하게 진리를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특히 가이오는 나그네 된 자 즉 순회 전도자들을 성심성의껏 영접하고 섬긴 자였다.

당시 오순절 성령 사건 이후, 사도들과 여러 전도자들을 통하여 복음이 확장되었다. 많은 핍박과 박해가 있었음에도 교회는 계속해서 세워졌다. 문제는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을 가르칠 교사들이 부족했다. 그래서 전도사들이 교회들을 돌며 복음을 전파했다. 베드로나 바울, 바나바, 빌립 등도 모두 순회 전도자였고, 교사였으며 사도 요한 역시 동일한 일을 하는 사역자였다.

이들은 보수 없이 숙식을 제공받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 시 필요한 여비만을 지원받고 사역하였다. 그러다 이곳, 저곳에서 순회 교사를 가장한 거짓 교사들이 출현하여 진리를 오도하고 교인들에게 부당한 짐을 지도록 함으로써, 이제까지 순수하게 순회 전도자들을 접대하며 교회를 섬기던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고 순회 교사들을 접대하는 일을 꺼려하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 거기에 디오드레베라는 인물이 순회전도자들을 비방하고 맞아들이지도 않을뿐더러, 이들을 보살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인들을 교회에서 쫓아내는 작태를 저질렀다.

가이오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방인들을 위해 헌신하는 순회전도자들을 끝까지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순회 전도자들을 초지일관한 마음으로 섬긴 것이 아름다운 미덕이 되었고, 영혼이 잘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도 주의 사역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고 달려가는 사역자, 목회자들을 가까이 보게 된다. 복음사역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을 위해 여러모로 선한 마음으로 섬기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똑같이 십자가를 세우고 똑같이 교회를 세우지만 목사의 인격에 따라 목사의 믿음에 따라 거짓목자가 있고 참이 있다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 잘못된 목회자들의 뉴스를 접하고 상처 받아 신앙을 버리고 떠나거나 주의 종들을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경우가 생겼다. 그래서 참 교회, 내 영혼을 살리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참 종을 만나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는 사람을 보고 따라가는 신앙생활을 하면 사단에게 속게 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고, 성경에 나오는 좋은 믿음의 선배의 모습을 보고 따라가야 한다. 11절에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느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가이오가 끝까지 진리 안에서 행하여 큰 복을 받고 사랑받은 것처럼 우리도 분별하여 진리를 행하여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큰 축복 속에서 사랑받고 달려가는 모두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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